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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제69주년 기념식 개최조국의 위기 앞에서 자발적으로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을 기억합니다. -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제69주년 기념식 개최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오는 26일(목) 오전 11시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비(인천수봉공원)에서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회장 박운욱) 주관으로 ‘재일학도의용군 6·25참전 제69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 재일학도의용군은 6.25전쟁 당시 642명 재일동포 청년들이 병역의 의무도, 조국의 부름도 없었지만,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발적으로 포화에 휩싸인 조국을 위해 대한해협(현해탄)을 건너 참전했다. ○ 이들은 미8군과 한국군 부대에 배치되어 인천상륙작전 및 서울탈환작전, 압록강 혜산진 전투, 원산상륙작선, 장진호 전투, 백마·금화지구 전투 등 각종전투에 참전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날 기념식은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인사,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원, 재일본대한민국민단회원, 시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사, 대통령 축사(국가보훈처장 대독), 헌시낭독, 전우가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삼득 보훈처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세계 최초의 재외국민 참전이라는 위대한 애국의 역사를 쓰신 재일학도의용군의 활약으로 조국은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었으며, 정부는 미래세대들이 재일학도의용군의 이야기를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도록 더 많이 알리고 기릴 것”이라고 위로·격려할 예정이다.□ 한편, 1979년에 인천수봉공원에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비’를 건립된 후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재일학도의용군의 충혼을 기리고 그 참전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매년 이곳에서 기념식을 갖고 있으며, ○ 특히, 해외동포의 참전은 세계역사상 유례가 드문 사례로 이스라엘 전쟁당시 해외동포 참전보다 17년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재일학도의용군의 의로움,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우리 후손에게 애국정신의 귀감이 되고 있다.[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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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특허, 독립운동 자금이 되다한국인 최초 특허, 독립운동 자금이 되다- 대전현충원에서 한국인 제1호 특허권자 정인호 애국지사 추모식 개최 -□ 특허청(청장 박원주)은 한국인 제 1호 특허권자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인호 선생(1869.10.~1945.1.)의 애국정신과 한국 특허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추모행사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ㅇ 행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광복 74주년, 정인호 선생의 특허등록 110주년을 기념해 오는 13일 오후 3시 대전현충원 정인호 선생의 애국지사 묘역에서 진행된다. 추모식에는 선생의 후손(증손녀 4명)들과 박원주 특허청장, 대전현충원장 등이 참석해 선생을 추모할 예정이다. ㅇ 특허청은 선생의 후손들과 간담회를 진행해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업적을 기릴 예정이다. 또한 한국인 제 1호 특허권자로 한국 특허사에 남긴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선생의 묘역에 상징물을 부착해 특허제도에 기여한 공로도 기릴 계획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일본제도에 의한 한국인 1호 특허가 역설적이게 민족기업을 성장시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의 숨은 자금원이 됐다”며 “한국인 1호 특허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극복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며, ㅇ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 특허분야에선 200만번째 특허등록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200만건에 달하는 특허와 새롭게 축적될 특허들이 우리경제의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인 1호 특허권자인 정인호 선생은,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민족교육운동에 앞장섰고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징역(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훈록[정인호 지사 약력]❑ 정인호(1869.10.~1945.1.) 선생은 경기도 양주출신으로 궁내부 감중관과 청도군수를 지냈고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군수직을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ㅇ 1908년 초등대한역사 등 교과서를 저술해 교육을 통한 민족교육운동에 힘쓰는 등 교육자, 저술가, 발명가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 1909년 8월 19일 통감부 특허국에 특허 제 133호로 말총모자 특허를 등록받으며 한국인 특허 1호의 주인공으로 우리 특허사에도 큰 이정표를 남겼다. ㅇ 일제에 의한 특허제도*이지만 한국인 최초로 특허를 획득했고 일본에도 특허를 출원해 등록받았다. * 당시 우리의 특허제도는 일본에 의해 1908년 한국특허령이 시행되며 도입됐다. 이는 일본의 특허제도를 적용한 것으로 한국 내에서 미국과 일본의 권리보호에 주안점을 둔 제도였다. 경술국치후엔 한국특허령을 폐지하고 일본 특허법을 그대로 운영했다. ㅇ 선생은 한국인 최초의 특허권자로 말총모자, 말총 핸드팩, 말총 토수, 말총 셔츠 등 다양한 말총제품을 제작해 일본, 중국 등에 수출하며 민족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대한독립구국단을 결성해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ㅇ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던 활동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ㅇ 정부는 독립 운동가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훈록, 한국특허제도사[자료제공 :(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