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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제50보병사단과 통합방위 합동훈련 실시▲ 영덕군과 제50보병사단이 16해안감시기동대대, 영덕경찰서, 영덕소방서 등과 함께 통합방위 합동훈련 모습 = 사진설명 (파이널24) 이재덕 기자 = 영덕군과 육군 제50사단은 해상 피난민이 유입에 따른 대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지난 12일 대진항과 영덕군민운동장 일대에서 통합방위 합동훈련을 시행했다. 이날 훈련은 ‘24년 자유의 방패(FS) 연습’의 일환으로, 영덕군과 제50사단 영덕대대를 비롯해 16해안감시기동대대, 영덕경찰서, 영덕소방서, 등의 기관·단체 60여 명이 동원돼 군부대와 관계 기관의 통합방위 태세를 한층 견고히 하는 교두보가 됐다. 특히, 이날 훈련은 절차식과 시범식 훈련을 통해 자칫 민간의 관점에서 생소할 수 있는 군 훈련을 이해하고 익히기 쉽게 해 유의미한 훈련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유수(소장) 제50사단장은 “이번 훈련이 절차식으로 진행돼 통합방위에 참여한 민·관·군·경·소방이 훈련 상황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 유의미한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이어 정 사단장은 “통합방위 작전은 작전의 각 요소가 함께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그 능력이 배가된다”며, “오늘 훈련은 참여한 각 주체가 적극적인 협조와 공조를 이뤄 그 성과가 높았다”고 격려했다. 김광열 영덕군수는 “최근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어 우리 군에서도 군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조와 공조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지역 안보태세 확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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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거미줄 전선 없애고, 산뜻함 뽐내는 감고을 영동의 중심시가지[파이널24]충북 영동군의 도심 거리가 한층 더 쾌적하고 산뜻하게 탈바꿈했다. 영동군이 지난해 4월부터 추진한 군청회전교차로~구교삼거리~구교사거리 구간의 전선지중화사업이 최근 마무리되면서 이 구간 머리 위에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던 각종 전선들이 사라졌다. 군민들의 보행 편의와 안전 수준도 한단계 높아지게 됐다. 영동군은 사업비 40억원을 들여 1년여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영동읍 군청 회전교차로~인삼탕~구교사거리 회전교차로를 잇는 800m 구간의 전선·통신선 등을 모두 땅에 묻었다. 이중굴착방지회의 개최·노후상수도관 교체대상지의 병행 매설을 추진하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살피고 불편을 최소화했다. 이 사업으로 영동읍 내 중심도로변 미관이 좋아지고 안전사고 위험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군은 거리 미관과 보행환경을 개선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공모사업에 응모하며 전선지중화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군은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4구간(L=3.65Km)에 대하여 사업추진을 완료했으며, 영동의 중심 시가지를 대상으로 관련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3개구간(L=2.1Km)은 현재 추진 중으로, 최근 공모사업이 확정된 사업 2개소인 영동천로 지중화사업(영동1교~영동2교~규수방) 0.8Km와 계산로 지중화공사(드림디포~케이티~영동파크) 0.6km, 피난민 거리(경북상회~산림조합) 0.7km는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도로변에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각종 전선로와 전신주등이 추가 정비됨으로써 보행환경개선과 재난 및 사고 예방은 물론, 영동의 도시미관은 더욱 깔끔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상권 활성화와 군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공사 기간 중 불편함을 참고 협조해 준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라며, “앞으로도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미관 개선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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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우리의 태극기” 기획전시회 개최[파이널24]동두천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2021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과 관련하여,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를 중심으로, 태극기를 살펴보는 『태극기 전시회』를 2021년 6월 6일부터 7월 31일까지 기획전시한다. 기획전시회에서는 태극기의 역사 및 의미, 외국인이 알아보는 태극기, 등록문화재로 보는 태극기 등 다양한 태극기의 사진 및 영상,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소장한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도 같이 전시함으로써, 태극기를 보다 다채롭게 전시 및 소개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시회에서 특별히 전시하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북녘으로부터 탈출하던 피난민이 소장한 태극기로써, 당시 피난민을 구출하던 미국 해군 장교에 전해졌고, 그 이후 동두천시에 기증됐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전쟁 당시 긴박했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상징성과 의미가 있어, 현재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지정예고된 상태이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인 이번 기획전시회는 올해 6월 호국보훈의 달에 맞춰, 나라사랑과 안보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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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갈곡리 성당 등 경기도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12건 등록 예고[파이널24]경기도가 근대문화유산을 보조·활용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파주 갈곡리 성당 등 12건을 등록 예고했다. 12건의 문화재는 경기도가 추진 중인 경기도 등록문화재의 첫 번째 후보들로 도는 도민 의견 수렴 및 전문가 검토 등 심의 과정을 거쳐 문화재들의 연번을 매길 예정이어서 이르면 10월쯤 ‘1호 경기도 등록문화재’가 선정될 전망이다. 경기도는 지난 20일 경기도문화재위원회 제1차 등록분과 회의에서 통과한 근대문화유산 12건을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27일 등록 예고했다. 12건 중 건조물은 ▲파주 갈곡리 성당 ▲파주 말레이시아교 ▲파주 라스트 찬스 ▲수원 옛 신풍초등학교 강당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훈련농장 사일로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옛 동판·KSC안내판 등 6건이다. 기타 생활과 산업유물 등은 ▲수원 방화수류정 자개상 ▲수원 화성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도면 일괄 ▲안산 기아 경3륜 트럭 T600 ▲안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 ▲안산 목제솜틀기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 등 6건이다. 도는 등록 예고된 12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친 후 도민 설문조사,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10월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이때 1호 등록문화재 등 문화재 번호도 정해진다. 앞서 도는 지방정부 지정문화재로 관리하는 전통문화유산과 달리 근대문화유산(만들고 50년 이상 지난 문화유산)의 경우 국가 등록문화재에서 탈락 시 마땅히 보호할 방법이 없자 지방정부도 등록문화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안을 건의한 바 있다. 2019년 정부가 도의 건의안을 수용하면서 도는 조례 개정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 등록문화재 선정작업을 시작했다. 12건의 등록 예고 문화재를 구체적으로 보면 ‘파주 갈곡리 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지원으로 건립된 많은 성당 건축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양식을 보여준다. 성당 주변이 구한말 이후 형성된 신앙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초기 교회사적으로 가치 있다는 의견이다. ‘파주 말레이지아교’는 1960년대 말레이시아 원조를 통해 설립된 다리로, 국제적인 협력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개통식 사진에서 나타나듯이 지역민들 관심과 생활 밀접성 등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군 클럽으로 쓰였던 ‘파주 라스트 찬스’는 건물 정면에 브이(V) 모양 기둥, 입면의 수평 띠, 임진강변 조약돌을 이용한 아르누보 패턴의 모자이크 장식, 바닥의 인조석 물 갈기 등 한국전쟁 직후 건립된 이질적 외관을 보존해 미군 주둔에 따라 형성된 지역적 특징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이 건물은 가왕 조용필이 무명 시절 노래한 곳으로 알려졌다. ‘수원 옛 신풍초등학교 강당’은 120여년의 역사를 지녀 수원 최초 근대교육기관인 옛 신풍초등학교의 부지 내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신풍초등학교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근대 건축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천 한미재단 소사 4-H훈련농장 사일로’는 젖소, 돼지, 닭의 사료인 사일리지를 저장한 시설(사일로)로 벽면에 한미재단의 표식이 있어 농장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1953년 8월 발족해 전쟁 후 한국의 재건과 농업기술 근대화에 이바지한 한미재단이 부천 소사리에 4-H 훈련농장을 설립했다. 한미재단이 1964년부터 1979년 해체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했던 증거물이다. ‘오산 유엔군초전기념비와 옛 동판·KSC안내판’ 은 한국전쟁 초기 기습남침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북한군을 맞아 유엔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전사자가 생겼던 죽미령 전투 장소에 건립된 기념비다. 기념비 이외에도 최초 사용된 동판과 KSC(주한미군 전투지원을 맡은 한국 근무단) 안내판 등 3점이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게 한다. 일제강점기 제작된 ‘수원 방화수류정 자개상’은 희귀하게 수원 화성의 용연,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소재로 정교한 조각과 회화적인 화면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특히 상판의 회화적 문양이 정교하고, 자개상의 네 측면과 다리에도 드물게 섬세한 문양을 넣었다. 이러한 점에서 일제강점기 자개 공예문화 일부를 살펴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수원 화성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도면 일괄’은 1915년부터 1932년 사이 만들어진 문화재 보수 관련 근대건축 도면 94점이다. 광화문, 불국사, 경복궁, 흥인지문, 수원화성, 경주 석빙고 등 대한민국의 중요 문화재를 수리하거나 실측하면서 작성한 도면이다. 일제강점기 이루어진 문화재 수리의 내용과 방법 등을 알 수 있어 등록 가치를 인정받았다. ‘안산 기아 경3륜 트럭 T600’은 1960~70년대 국내 경제 발전과 함께 운송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모델로 한국 자동차 산업 및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자료다. 초창기 자동차 산업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교통사와 더불어 일상 생활사를 엿볼 수 있으며, 현재 보존 상태도 우수하다. ‘안산 동주염전 소금운반용 궤도차’는 1960~1980년대 경기도 일대 제염산업을 보여주는 실물자료다. 서해안 일대 염전(소래, 군자, 동주)에서 육지나 바닷가로 소금 운반을 위해 직접 사용된 궤도차다. 경기도 해안가의 전통제염산업의 특징을 보여주는 희소성 있는 산업유산이다. ‘안산 목제솜틀기’는 현재까지 대부분 전해지고 있는 자동식 솜틀기가 아닌 수동식(발로 디뎌서 돌리는 방식)이다. 상표와 명문 등으로 제작처(제작자)를 알 수 있으며 한국의 의생활사에서 솜틀 문화를 잘 보여주는 일상 생활사 관련 유물이다.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장 한국전쟁 피난민 태극기’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9월 북녘으로부터 탈출하던 피난민이 간직하고 있던 태극기를 미군에 전달했고 이후 미군의 후손이 동두천시에 기증했다. 당시 긴박했던 역사적 비극을 이해하는데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정식 경기도 문화유산과장은 “이번에 등록 예고하는 문화재는 경기도 등록문화재 도입 이후 최초로 선정되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 도내 근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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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올해 건설·도시 분야 744억원 투입, 미래성장기반 조성[파이널24]영동군이 신축년 새해에도 도시·건설분야에 744억원을 투입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미래성장기반을 재설계를 추진한다. 15일 군에 따르면 영동군은 건설교통분야에 535억원을, 도시건축 분야에 209억원을 투입해 군민들의 정주여건 개선 사업을 집중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올해 군정 총 예산대비 14.59% 정도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지역 미래발전의 새 동력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제적 재정투자와 신속 발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한다는 구상이다. 건설교통분야 중 15억원으로 가로(보안)등 신규 설치 및 조도개선 사업, 양방형 원격조명 제어시스템 구축, 건설기계 등록 및 사업장 관리 등으로 믿음과 신뢰받는 건설행정을 추진한다. 61억원 예산으로 70세이상 어르신 버스비 무료지원, 무지개 택시운영, 농촌형 교통모델 지원, 승강장․교통안전 시설물 설치 등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문화를 구축하고, 168억원을 투입해 산막~조동간 도로 포장, 농어촌도로203호선 재해복구, 교차로 개선, 도로유지보수 등 교통편의 증진을 위한 도로기반을 확충한다. 또한, 산익지구 등 소규모용수개발, 장척지구수리시설개보수 사업 등으로 경쟁력 있는 농업생산기반 조성에 119억원을, 특색있는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 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 등의 살고 싶은 정주공간 조성에 163억원을 들인다. 주차장 조성 및 주차지도 등 주차정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특별회계예산으로 9억여원이 투입된다. 도시건축분야에는 209억원의 예산을 들여, 균형개발과 보존의 조화로 전반적인 군민 생활수준 향상을 도모한다. 영동 군관리 기본계획 수립, 피난민거리 전선지중화사업 등에 34억원을 투입하고, 영동 햇살 가득 다담길 조성, 경부선 영동가도교 확장 사업을 본격 추진하며 쾌적한 도시공간 조성에 82억원을 투입한다. 군 전역에 주민생활편익사업으로 49억원을 투입해 균형있는 지역개발을 도모하며, 뜰방가꾸기 개선, 공동주택 환경정비,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주거환경 개선에 44억원을 투자한다. 군은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과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건설․도시 조성사업을 추진하며,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군민 삶의 질을 한단계 높인다는 구상이다. 무엇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춘 정주여건 개선사업을 진행해, 지역의 발전동력원을 확고히 하고 군민행복을 이끈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지역 발전을 가속화할 사업들의 체계적 계획 수립과 재원 마련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라며, “군민과 소통하며 누구나 살기 좋고 살고 싶은 영동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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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2021년 달라지는 대전시의 문화유산 정책과 사업들[파이널24]대전광역시 2021년 문화유산 정책의 슬로건은 ‘포용하고 함께하는 문화유산도시 조성’이다. 과거 문화재 정책의 핵심은 지정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엄격한 물리적 ‘보존’에 있었지만, 지금은 보존과 함께 문화재의 활용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다양한 정책 사업들이 문화재 업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전시 또한 문화재 분야의 정책 방향과 관련 사업 추진에 문화재 활용 가치 요구 등 시대적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 대전시 등록문화재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소유자의 자발적인 보존의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활용이 보장되는 유연한 보호제도이다. 이는, 최근 지역의 현안으로 떠오른 동구 소제동의 철도관사촌을 비롯, 레트로 열풍을 타고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특이한 외관의 1950~60년대 근현대 건축물들에 대해, 보호와 함께 다양한 활용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에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전시에서는 2018년도부터 ‘도시기억프로젝트’라는 지역의 다양한 근현대문화유산에 대한 조사와 기록화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전국에서 최초로 재개발지역에 대한 3D 스캐닝 작업을 시도했으며,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기 피난민들의 생활공간인 ‘중앙시장 해방촌’의 건축조사를 진행했다. 올해는 도시재생사업으로 곧 철거가 이루어질 대전역 앞 ‘쪽방촌’이 그 대상이 될 예정이다. 또한,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관심을 받아왔던 동구 이사동의 유교문화유산과 산성(山城) 관련 사업들 또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동은 송촌동과 함께 우리지역의 대표적인 사족(士族)인 은진 송씨의 집성촌으로, 한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를 검토했을 만큼 보존가치와 활용 가능성이 높아 지역사회 안팎에서 다양한 논의들이 있어 왔다. 이에, 대전시는 충청유교 문화권사업의 거점공간으로 이사동에 ‘유교전통의례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접목하여 자연, 생태, 농촌 체험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으로, 올해 안에 토지매입을 완료하고 22년부터는 실질적인 건립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2012년도부터 추진된 계족산성 종합정비 사업도 계속 진행 중이며, 올해는 월평동산성 등 관내 7개의 산성과 보루 등에 대한 ‘산성종합정비계획 용역’도 함께 추진되어, 산성을 활용한 역사문화관광자원 구축을 통한 ‘산성의 도시, 대전’으로 명성을 높일 예정이다 . 아울러, 그 동안 딱딱하고 어려운 한문으로 표기된 문화재 안내판들을 알기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교체해 나가는 사업과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문화재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문화재 주변 ‘무장애’ 시설들을 확충, 보완해 나가는 생활밀착형 사업들도 꾸준히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작년도 문화재청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대전전통나래관의 문화재 전수 프로그램과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워진 대전무형문화재전수회관의 다양한 공연, 그리고 ‘문화가 있는 날’을 통해 모든 시민들에게 문화유산의 향유와 공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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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초청장진호 전투 영웅 등 미국, 터키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 한국 방문한다. - 9월‘유엔참전용사’재방한 초청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오는 26일(목)부터 5박 6일간 미국, 터키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77명*이 대한민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 방한 인원 : 미국 58명(본인 23명, 가족 35명), 터키 19명(본인10명, 가족 9명) ○ 미국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주관하는 ‘장진호 전투 영웅 추모행사(27일)’에 참석하여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며, ○ 터키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경기도 군포시와 용인시에 소재한 참전기념비 등을 방문하여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큰 용기를 보여준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군포시가 개최하는 위로 오찬(27일)에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에 방한하는 참전용사 중에는 6·25전쟁 중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이 포함되어 있어 재방한의 의미를 더한다. * 장진호전투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미군 제1해병사단 1만 5천명이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지역으로 철수에 성공한 작전이다. 한편 작전 중 미 해병 4천 5백여 명 전사하고 7천 5백여 명이 동상을 입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흥남철수 작전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미군과 한국군이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메러디스 빅토리 호(Meredith Victory)'에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한 것으로, 이 작전으로 10만여 명이 무사히 흥남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이에 대한 참전용사의 주요 스토리는 아래와 같다. ◎ 밀튼 워커(Milton Walker, 장진호 전투 참전) (참전기간: 1950년 8월~1951년 5월, 소속?계급 : 미 해병 상병)워커씨(만89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48년 9월 해병대 입대하여 1950년 8월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지프차를 몰며 전방에 있는 전방관측 장교에게 통신장비를 전달하는 등의 작전을 수행하며 그 당시 한반도 남쪽을 방어하던 미 육군을 도왔다고 한다. 한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날 밤 주스, 쿠키, 사탕 등을 지프 구석구석에 숨겨뒀으나, 그 다음날 습격을 당해 지프가 완전 박살이 났던 일화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한강을 건너 서울을 수복하고 38선 위쪽으로 북한군을 밀어내기 위한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 동해쪽으로 이동하여 북한의 원산에 정박한 뒤 장진호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이렇게 상기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중국까지 진격하길 원했던 것 같았어요. 당시 지휘관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이었는데 정찰대는 미 해병 1사단이 배속되었던 제10군단에게 계속 북한에 중공군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았어요. 장진호 북서쪽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근방에 중공군이 많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게 되었고, 산을 오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가 되었지요” “약 150,000~200,000명의 중공군과 북한군이 있었고 우리 병력은 10,000~15,000명밖에 되지 않아 수 적으로 매우 불리했어요. 거의 대부분의 전투는 밤에 치러졌고 중공군은 공격하기 전 호루라기와 나팔을 불어댔는데 그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소리였어요.”“식량, 의약품, 탄약 등 생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게 다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공중투하로 받은 보급품으로 4~5일 더 견디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부대원이 모두 함께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후퇴 였어요”“우리 해병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후퇴하지 않기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함흥-원산 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후퇴하는 것이 더 어려웠죠. 날씨는 갈수록 추워져 영하 25~40도의 극한 추위에 강풍이 불고 눈도 내렸죠. 우리를 포위했던 중공군이 우리 진지 남쪽에 있던 다리를 모두 파괴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더 험난했어요. 하지만 공군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어요, 아마 공군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병력의 60~70%는 적군과의 교전과 극심한 추위로 인해 대부분 사망했어요. 나머지 병력은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에만 집중하였고 다행히도 우리는 사단 본부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손과 발은 동상에 걸린 채 21일 동안 차가운 전투식량과 크래커, 쿠키, 주스로만 배를 채웠죠. 당시 한 가지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박격포 병들이 포탄을 “투시 롤(미국 초콜렛 사탕)”이라고 불렀는데 공중투하를 담당하는 부대에게 “투시 롤이 부족하니 더 보내달라”고 말하자 포탄이 아닌 진짜 투시 롤을 공중투하로 보내줬고, 초콜렛 사탕을 보며 모두가 신났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네요.““당시 우리가 있던 곳에는 약 100,000명의 피난민들이 있었는데 이후 부산에서 다시 정박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38선 위쪽까지 전진했어요.” 라고 회상했다.그는 이후 1951년 5월 중순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헨리 쉐이퍼(Henry Schafer, 장진호 전투 참전) (참전기간: 1950년 9월~1950년 12월, 소속?계급 : 미 해병 병장)쉐이퍼씨(만88세)는 1948년 미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인천과 김포공항을 지나 한강을 건너 서울에 도달하여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밀어내는 전투에 참전했다.“끔찍한 전투였어요. 날씨는 너무 더웠고 밭을 지나면 비료 냄새가 진동했죠.”“당시에는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격퇴시켰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다고 당시 생각했고. 참전 중 10월에 생일을 맞이하기 며칠 전 쉐이퍼씨는 조카에게 “내가 19번째 생일을 무사히 보내게 되면 아마 80살까지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어요.”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12월 1일, 유담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던 아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고 쉐이퍼씨는 그 소식을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사람이었다. 참호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뛰어가던 중 미국 경 기관총으로 무장한 중공군이 쉐이퍼씨를 향해 총을 쐈고 양쪽 팔에 총 세 번의 총상을 입은 쉐이퍼씨는 언덕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그리고 또 다시 옆구리 쪽에 총상을 입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던 그를 본 다른 해병이 그를 끌고 언덕 아래까지 내려와 지프 트레일러에 실었다. 트레일러 안에서 쉐이퍼씨는 모르핀을 맞았고 종부성사(죽음 의식)를 받았다고 한다.이후 일본에서 치료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13번의 수술을 받은 그는 결국 한쪽 팔과 다리, 발의 일부분을 절단했다.그는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고 34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오는 10월에 8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항상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대해 큰 자긍심을 느낀다.”다고 전했다. ◎ 웨인 스트렁크 (Wayne Strunk, 흥남철수작전 참가) (참전기간: 1950년 9월~1951년 9월, 소속?계급 : 미 해병 병장)스트렁크씨(만86세)가 6.25전쟁에 참전한지 69년이 흘렀다. 입대 당시 그는 17세였다. 그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고 1950년 10월말 경에 북한 이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1950년 11월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당시 중공군으로 인해 대규모 철수 작전이 이뤄졌고,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 직전 흥남을 떠나 이후 부산을 향했다.그는 “참전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기억이 나질 않지만, 수많은 피난민과 혹독한 추위를 겪었던 것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 프레드 메이슨 주니어(Fred Mason JR.) (참전기간: 1950년 7월~1951년 6월, 소속?계급: 미 제25사단 중사)메이슨씨(만94세)는 1950년 8월 부산에 도착해 마산 남서쪽에 주둔하던 25보병사단 제90야전포병대대에 배속되었다. 1950년 8월 12일, ‘피의 협곡’으로 불리는 사건이 발생해 북한군에 의해 24명이 전사했고 많은 병사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었다.메이슨씨는 “참전당시 늘 남북한 피난민에 대한 걱정을 했어요. 특히 북한에는 강추위가 덮쳤기 때문에 더더욱 염려했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북한에서 철수하던 그 과정은 차라리 잊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로 참혹하고 끔찍했어요. 군인들의 시체와 부서진 장비가 뒤섞여 있었고 날씨도 최악이었죠. 70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을 다 기억하긴 어렵지만 가끔 이런 기억들이 떠오릅니다.”라고 회상했다.메이슨씨는 “한국 국민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으며 한국이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만큼 6?25전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라고 재방한 소감을 전했다. ◎ 고(故) 레이몬드 크리스먼 (Raymond Chrisman)씨의 유족 샐리 슈켈(Sally Schuckel) (참전기간 1952년 11월~1954년 10월, 미 제7사단 상병)고(故) 크리스먼씨는 제7보병사단에 배속되어 불모고지전투(Old Baldy), 폭찹고지(Porkchop Hill)전투, 제인러셀고지(김화 오성산)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그 지역들은 고인에게 매우 익숙한 곳이었다고 한다.고인의 유족으로 방한하는 샐리 슈켈씨는 “한국이 이렇게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참전용사들의 뜨거운 열정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 아울러, 유엔참전용사 및 가족들은 28일(토)에 비무장지대(DMZ)와 임진각을 방문하여 안보현장을 둘러보며 남북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 30일(월)에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하여 참배하는 시간과 인사동을 둘러본 후, 저녁 18:00부터 보훈처에서 마련하는 감사만찬(그랜드 앰배서더)에 참석한다. ○ 만찬 행사는 주한미국대사, 주한터키대사 및 참전용사대표 등이 참석하고, 박삼득 보훈처장의 환영사와 ‘평화의 사도메달’ 수여의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 한편, 유엔참전용사 재방한은 지난 1975년부터 민간단체 주관으로 시작한 후 2010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계기로 보훈처에서 주관하면서 공식적인 행사로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초청하기 시작했으며, ○ 이를 통해 지난해까지 3만 3천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유가족이 한국을 다녀가는 등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미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자료제공 :(www.korea.kr)]